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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이노센트 제로

79 리필 다즐링

by 가유 2022. 3. 10.

공백 포함 1285

03.10. 리필 다즐링

문전박대라고 해도 좋았다. 당당히 집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살금살금, 몰래몰래. 냐미링의 염동력으로 창문의 걸쇠를 열어 두 포켓몬은 겨우 에셸의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 안이 부산스럽게 달그락거린다. 빨리 꺼내 달라고, 안 꺼내주면 저주해버린다고 징징거리는 바나링부터 코끝으로 톡 건드리고 이어서 저글링, 후와링, 다즐링까지 볼에서 나왔다.

하가링만이 웃어른답게 점잖게 볼 안에 있길 택했다. 제가 나가면 어떤 소동이 벌어질지 아는 것이지. 저로 인해 집이 무너져버리면 제 트레이너가 그렇게 꺼려하는 집에서 나올 수도 있겠지? 스케일이 다른 짓궂음으로 그런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었으나, 여기선 트레이너를 믿고 얌전히 있을 타이밍이다. 둔치항의 바닥을 지배하던 포켓몬은 때와 장소를 가리는 노숙함이 있었다.

후와링은 에셸의 방에서 리본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걸 몸에 휘감은 채 창밖으로 둥실둥실 떠올랐다. 달링가의 지붕 위로 둥실라이드 하나가 연이라도 된 것처럼 제 몸을 리본끈에 묶은 채 날았다. 높이높이 매달린 포켓몬은 SOS 신호 같을까? 그럴 의도는 아니었으나. 에셸이 보이지 않자 서러움이 차오르는 바나링은 저글링이 도닥도닥 달래주었다. 냐미링은 입을 다문 위키링을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 아무것도.

그 사이 다즐링이 에셸의 방을 빠져나갔다.

다즐링은 자신을 유혹하는 차향을 따라 저택을 날았다. 이 집은 곳곳에 다양한, 아주 좋은 차향이 배어 있었다. 이 찻잎은 아쌈, 저건 다즐링, 닐기리 향도 배어 있다. 상큼한 실론, 그 중에서도 진한 우바, 와인향의 키먼, 부드러운 윤난. 이곳은 다즐링의 천국만 같았다. 잠깐, 트레이너. 날 두고 혼자서 이런 차를 독점하고 있던 거야? 실망이야! 에셸에게 한소리 해야겠다고 그를 찾아 한참 저택을 돌았다. 그러다 발견한 저의 트레이너는…….

얼마나 걱정을 끼친 줄 아니. 에셸. 네 걱정에 한숨도 못 잤어.”

죄송해요, 어머니.”

둔치에 도착하고서도 바로 집에 오지 않고. 그런 애가 아니었는데.”

으응, 여러 가지로 일이…….”

자유와 방종을 구분 못할 나이는 아니지, 에셸 달링. 네 행동이 옳았다고 생각하니?”

아니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해요. 말만 그러는 건 아니고? 그래, 어쨌든 다음 마을로 돌아가기 전까진 당분간 집에 있으렴. 할 이야기가 아주 많아. 네에, 그럴게요. 꼭 닮은, 그보다 연상의 여자와 꼭 붙어서 인형마냥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 바보! 차가 식고 있잖아! 인간들의 분위기라곤 읽어낼 줄 모르는 포켓몬이었으나, 다즐링은 저 좋은 차가 덩그러니 식어가는 모습을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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