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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7. 무사태평하고 성급한
살비마을의 얕은 바닷가를 돌아다니던 탱그릴에게는 아주 느긋한 꿈이 있었다. 언젠가 8000m 심해까지 잠겨 그곳에 자신의 서식지를 꾸미겠다는 꿈이다. 정작 이 무사태평한 포켓몬은 이제껏 깊은 바다를 한 번 나간 적 없으면서 파도를 타고 건너오는 이야기만을 들으며 상상에 잠기곤 했다. 언젠가 나도, 좋아하는 상대-먹잇감-와 함께 심해로 잠겨야지. 그것은 모든 탱그릴의 오랜 꿈. 그야말로 동귀어진이다.
어딘가의 파란 탱탱겔이 귀가 가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오래되고 느긋한 꿈은 언젠가 이루어야지 하면서도 그게 언제인 줄도 모르고 내일로, 또 내일로 미뤄지고만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루지 않을까? 그게 오늘은 아니지만. 내일쯤 오지 않을까? 안 오면 모레도 괜찮지. 따뜻한 살비의 바닷가에서 밀물을 따라, 썰물을 따라 움직이며 이 탱그릴은 하염없이 느긋했다. 어쩌면 저를 맞이하러 올 꿈의 인연을 기다리는 강태공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마침내 그를 데려갈 인연이 나타났다. 저와 닮은 색으로 감긴 트레이너는 탱그릴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놓고 볼을 던졌다. 이상하다. 분명 저 얼굴은 내 팔에 안겨서 같이 심해로 내려가자는 표정이었는데, 왜 반대로 내가 너에게 포획되었을까. 그것 참 이상하네.
하지만 뭐,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트레이너는 탱글리에게 프릴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크루즈의 밑바닥에서 바다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곳 둔치의 바다는 살비와 다르게 많이 차가울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살비보다 훨씬 깊고 험난하고, 어쩌면 당신이 겪어본 적 없는 짜릿한 경험을 해줄지도 모르겠어요. 조만간 제가 심해까지 헤엄치는 법을 익혀볼 테니까. 함께 수영하지 않을래요?
조곤조곤하게 걸려오는 인간의 말을, 갓 야생에서 벗어난 탱그릴은 다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만은 분명 이해했다.
‘이 트레이너, 날 좋아하는구나!’
‘나와 같이 심해에 가줄 거야.’
바로 옆에서 샹델라가 흰눈을 뜨고 쳐다보는 줄도 모르고, 그 곁에서 다크펫이 부리부리하게 빨간 눈으로 째려보는 것도 모르고, 또 시작이네. 데인차가 낄낄 웃으며 여흥을 돋울 차를 끓이고 둥실라이드가 심해는 안 돼. 하늘이 좋아. 말하는 것도 모르고 끝내는 타타륜이 어린 것이 꿈이 크구나. 혀 차는 것까지 모르는 채 갓 달링 파티에 들어온 탱그릴은 태평한 꿈을 꾸었다.
트레이너와 함께 심해로 가라앉아 바닷속 성에서 행복한 꿈이었다. 그리고 무사태평하던 포켓몬은 유례없이 빠른 행동력을 보였다.
탱그릴의 몸이 진화의 빛으로 감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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